
민주주의의 기본은 대화와 타협이다.
한국에서는 미국의 역사에 대해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많지 않지만, 민주정치의 중요한 사례로 미국을 들 수 있다.
미국은 건국 초기 정치적 입장이 다른 사람들 사이의 관계가 오늘날 한국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복잡하고 동적인 모습이었다.
미국은 영국의 식민지로 시작되었다.
당시 식민지 주민들은 크게 세 가지 정치집단으로 나눠졌다. 독립을 원하는 '애국 집단(40%)', 영국의 지배를 옹호하는 '충성 집단(30%)', 그리고 정치적 견해를 유보한 '중립 집단(30%)'으로 구별됐다.
애국 집단은 독립을 소망했고, 충성 집단은 영국의 지배를 지속하려고 했으며, 중립 집단은 어느 한 쪽에 명확히 기울지 않았다.
충성 집단은 대체로 미국 내에서 큰 땅을 소유하고, 영국군의 보호를 받으며, 영국과의 무역을 통해 경제적 이익을 얻고 있었다. 이들은 독립을 원하던 사람들을 '폭력적인 무리'로 간주하며, 독립을 과격하고 불안정한 정변으로 보았다. 이러한 대립은 당시 미국 사회의 복잡한 정치적 상황을 잘 보여준다.
흥미롭게도, 미국의 제2대 대통령인 존 아담스는 한때 충성 집단 내에서 중립적인 입장을 취하기도 했다. 그는 영국의 지배 하에서도 식민지 주민들의 이익을 보호할 수 있다고 주장하며 독립전쟁을 반대했다.
법률에 기반한 통치와 헌법 정신을 중시하며, 정의 실현을 위해 영국 법에 따른 재판을 지지했다.
예를 들어, 보스턴에서 영국군이 식민지 주민 5명을 사살한 사건 재판에서 그 군인들을 변호했다. 아담스는 정치적 입장과 관계없이 법적 절차에 따라 정의를 실현해야 한다고 믿었다.
그 후, 아담스는 정치적 견해를 바꾸어 독립을 지지하는 방향으로 나아갔고, 식민지 의회에서 독립 정책을 수립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또한 조지 워싱턴을 독립군 사령관으로 임명하는 데 기여했으며, 독립 전쟁 후에는 워싱턴과 함께 부통령직을 수행했다.
두 사람은 정치적 의견이 다를 때도 있었지만, 국가를 위해 협력하며 영국과의 우호적인 정치 및 경제 관계를 유지하는 데 공헌했다.
현재 대한민국의 정치 상황을 살펴보면, 비상계엄 초기 야당에서 확신했던 조기 대선 가능성은 흔들리고 있다고 여겨진다. 최근 탄핵반대 지지율 상승, 탄핵반대 집회 참가자 증가, 어려워진 경제적·외교적 현실과 관련이 있다.
여론이 반영될 수밖에 없는 정치적 결정이 중요한 시점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구속기소된 이후 분열은 더 심화되고 있다.
대한민국 대통령은 내란음모나 내란선동죄를 포함한 포괄적인 내란죄나 반역죄를 제외한 다른 이유로는 기소되지 않는다. 대통령을 탄핵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헌법재판소의 판결이다.
다만 헌재의 판결은 추상적인 정치적 규정을 주관적으로 해석할 여지가 적지 않다. 재판관들의 찬반 비율이 여론과 유사한 경향을 보일 가능성도 있다. 지금 정치기류를 보면 좌우 모두 자신들에게 불리한 헌재 결정에는 승복하지 않을 태세다.
정치 엘리트들은 여전히 타협보다는 법을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해석하고 대립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안타까운 일이다.
정치권은 음모론이나 상대방을 배제하려는 시도에서 벗어나 국가가 직면한 경제적 위기와 외교적 도전에 대해 심도 깊게 논의하고, 정치적 논의를 정상화하는데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지금 한국에선 정치적 견해가 다른 사람들과 대화하면서 타협하고 협력하는 성숙한 정치가 절실히 요구된다.
정치적 갈등을 해결하려면 다수가 수긍할 수 있는 합리적인 타협안을 제시하도록 전략적으로 사고해야 한다.
국민들도 거리에서 정치적 견해를 표출하기보다는 상생을 위한 의견을 제시하고, 자신에게 배타적인 의견이라도 비난하지 않도록 조심했으면 한다.
조양래 프록스엔렘 대표 (유전학 박사/기능게놈학 전공)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