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양래 프록스엔램 대표 /조양래
조양래 프록스엔램 대표 /조양래

나는 두 번 총기 살인 사건을 목격했다. 두 사건은 미국 현대역사의 단면을 보여준다. 1999년 미국의 독립기념일은 많은 미국인들을 각성시킨 일요일이다. 그 날 아침에 한인 교회 앞에 정차된 세단에서 운전자가 한국인 학생을 향해 총을 쏘았다. 한국인 피해자는 총상으로 사망했다. 가해자는 추격하던 경찰에 포위된 가운데 생을 스스로 마감했다.

이 사건은 개인의 광기에 의해 실행한 것이 아니라 극단주의 백인들의 증오를 나타낸 범죄행위로 판명되었다. 당시 클린톤 행정부와 미국 국민들은 이 사건을 심각한 증오범죄로 정의했다.

가해자는 백인우월주의 단체인 창조주의 세계 교회 (World Church of the Creator)의 열렬한 추종자였다. 이 조직의 이념은 20세기 초 미국을 지배했던 쿠 클럭스 클랜(KKK)에 뿌리를 두고 있었다. 그들은 흑인, 유대인, 아시아인, 무슬림, 동성애자 등, 자신과 다른 모든 존재는 사라져야 할 대상으로 간주했다. 

가해자는 1999년 독립기념일 연휴 동안 시카고에서 농구코치를 쏘았다. 유태인 마을로 이동해 5명을 쏘았고, 다시 인디아나 대학으로 옮겨 유학 중인  한국인 학생을 쏘았다. 그는 인디아나 대학에서 공부한 적이 있었는데 한국인 학생들의 세련된 모습을 보면서 범죄대상으로 선정했다고 한다. 무차별적이고 목적 없는 살해처럼 보였던 이 사건은 뚜렷한 정치적 메시지를 내포한 인종전쟁의 선언이었다. 

이 사건 이후 백인우월주의는 무장폭력이 결코 사회적 지지를 받을 수 없다는 점을 절감했다.같은 이념을 공유한 이들은 전략을 바꿨다. 거리에서 총을 쓰지 않고 정치 캠페인과 엘리트 정치대표자 선출을 선택했다.

백인 민족주의적 정서는 2000년대 중반부터 '잊혀진 미국인'이라는 슬로건으로 포장되어 나타났다. 이는 2016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등장을 계기로 백인들의 정체성을 나타내는 정치로 이식됐다. 구체적으로 "우리는 우리 문화를 지키겠다”, '법과 질서', '불법 이민자 추방'과 같은 백인 우월주의 세계관을 내포한 정책의 근간을 이루었다.

백인 우월주의는 같은 맥락에서 '미국 법에 인종차별이 내재되어 있다는 사실을 가르치지 못하도록 한 교실에서의 비판적 인종이론 금지' 같은 정책도 지원했다.

1990년대만 해도 FBI가 범죄집단으로 간주하던 백인우월주의자들의 주장은  이제 미국의회 연단 위에서 공식적으로 언급되고 있다. 일부 보수 정치인들은 대놓고 정치 엘리트들과 유태인들이 백인을 유색인으로 바꾸려 한다는 음모론을 언급하며, 백인 유권자들의 공포와 불안을 자극해왔다. 이같은 흐름은 1999년에 자행되었던 총격범의 허무맹랑한 주장을 넘어 미국 대통령 선출에 큰 영향을 미치는 정치적 메시지로 재생되었다.  

보수성향을 보이는 극우 정치인들이 공화당에서 주류로 등장하면서 진보주의를 내세우는 민주당과 각을 세우고 있다. 이에 따라 보수진영과 진보진영 사이에 대화와 타협을 하던 전통은 사라졌다. 무장한 보수진영 군중이 의회에 난입한 사건은 대화 대신 폭력을 사용한 극단적인 사례다.

백인우월주의를 배경으로 정치무대에 등장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행보는 미국 사회를 넘어 국제사회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미국 사회는 몇 년간 보수와 진보 진영이 싸우는 불안정한 상태 속에서 돌파구를 찾으려고 노력할 것이다. 사정이 이리 된데에는 민주당의 책임도 없지 않다. 미국 진보주의 진영은 절절히 반성할 필요가 있다. 지식인들은 양 진영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정책을 제시해야 할 것이다. 

결이 조금 다르기는 하지만 한국도 미국과 비슷하다. 정치권에서 대화와 타협의 모습이 사라진지 오래다. 진보와 보수를 대표하는 민주당과 국민의힘은 지난 수년간 강대강으로 대치하고 있다.

국민들은 6월 3일 대통령 선거를 분수령으로 협상의 정치가 이뤄질 수 있다고 실낱같은 희망을 품고 버티고 있지만 대선이 끝나더라도 결과를 승복하고 서로 타협하지 않는다면 상황은 호전되지 않을 것이다.

비난이나 투쟁이 민주사회를 복원하는 최선의 길은 아니다.

엘리트 정치인들은 프란치스코 교황의 마지막 편지에 담긴 당부 속에서 대화와 타협에 대한 희망을 찾고 실천에 옮겼으면 한다.

"조금의 양보, 조금의 배려, 조금의 덜 가짐이 누군가에겐 따뜻한 숨구멍이 됩니다. 그리고 그 따뜻함은 세상을 다시 품게 하는 온기가 됩니다." 

조양래 프록스엔렘 대표 (유전학 박사/기능게놈학 전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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