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심성 공약 따라 무리하게 건설…세금 낭비 대표사례

179명의 목숨을 앗아간 무안공항 제주항공 참사가 철새 도래지 인근에 정치권 논리로 무리하게 국제공항을 건설한것이 근본적인 원인이라는 지적이 제기된다.

연말을 앞두고 29일 전남 무안국제공항에서 발생한 제주항공 여객기 사고는 짧은 활주로 길이, 미숙한 공항 운영 경험 등이 복합적으로 영향을 끼친 참사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지만 근본적으로 공항 건설 초기부터 지적된 조류 충돌에 의한 사고로 항공기 고장이 발생했을 가능성이 높게 거론되고 있다. 즉 공항을 지어서는 안되는 철새 도래지인근에 정치논리로 무리하게 공항을 지어 새떼로 인한 사고 발생 가능성이 컸다는 비판이다. 

30일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사고 여객기가) 착륙을 시도하다가 관제탑에서 조류 충돌 주의 경고를 했다"며 "직후 얼마 안 있어 조종사가 메이데이(조난신호) 선언을 했다"고 29일 밝혔다.

사고기는 활주로 방향으로 착륙하려다 관제탑의 조류 충돌 주의 경고를 받았고, 1분 뒤 기장이 메이데이를 선언했으며, 메이데이 선언 2분 뒤 당초 착륙 방향이 아닌 다른 방향으로 동체착륙을 시도하다 사고가 발생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여객기 사고 원인의 하나로 조류 충돌(버드스트라이크)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무안국제공항 인근은 1970년대 간척지 개간 이후 조성된 창포호가 1000㏊에 걸쳐 있고, 바다인 청계만도 인접해 있다. 창포호에는 멸종위기 1급 황새와 천연기념물 흰꼬리수리 등은 물론 청둥오리와 새오리 등 오리류가 집단 서식하고 있다. 바다와 인접해 철새들의 중간 기착지이자 서식지로 꼽히고 있다.

올해 들어서는 예전에 비해 철새가 빈번하고 많은 수가 관찰된 것으로 전해졌다.

2022년 4월 공개된 무안국제공항 활주로 연장사업에 대한 보완 환경영향평가에 따르면 무안공항 주변 13㎞ 이내에 철새도래지 4곳(무안군 현경·운남, 무안 저수지, 무안-목포 해안, 압해도)이 분포하고 있으며, 2016~2021년 동안 4곳 모두 조류 출현이 증가 추세에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무안공항은 서남권 거점 공항을 목표로 지난 2007년 개항했다.

지난 1994년 서남권 국제공항의 최적지로 선정된 뒤 1997년 실시설계를 거쳐 1999년 12월 착공식을 가졌고, 당초에는 2002년 전후로 문을 열 예정이었지만 토지 보상 등의 사유로 늦어지게 됐다.

무안공항은 입지 선정 당시부터 논란이 있었다. 군내에서 최대 철새 도래지라는 창포호가 인근에 있고, 바다인 청계만도 가까웠기 때문이다. 특히 이 지역에는 113.34㎢의 무안갯벌습지보호구역 등이 조성돼 있다.

전남 무안군 현경면·운남면에선 1만 2000여 마리의 겨울 철새가 관찰되는 것으로 알려진다.

공항 건설·관리 과정에서 조류 충돌 위험성을 십분 고려해야 하는 건 비행 중 새가 비행기 동체나 엔진 등에 부딪힐 경우 대형 사고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무게가 900g에 불과한 청둥오리 한 마리도 시속 370㎞로 상승하는 비행기에 부딪히면 기체에는 4.8t에 달하는 충격이 가해진다고 한다. 또 엔진 속으로 조류가 빨려 들어갈 경우 화재가 발생하거나, 엔진이 폭발할 가능성도 있다.

국내 공항 조류 충돌 건수는 2019년부터 올해 상반기까지 623건에 달한다.

연도별로 보면 2019년 108건에서 코로나19 대유행 영향으로 2020년 76건으로 감소했다가 이후 2021년 109건, 2022년 131건, 2023년 152건으로 증가세다.

또한, 무안공항 참사 원인으로 무안공항의 둔덕과 관련해 의문점이 제기되고 있다.

29일(현지시간) 영국 스카이뉴스는 전투·항공기 조종사 출신의 항공 분야 저널리스트인 데이비드 리어마운트와의 인터뷰를 통해 이번 참사의 원인에 대해 상세히 분석했다.

리어마운트는 이 방송에서 무안공항 활주로 끝의 둔덕이 이번 사고의 결정적인 원인이 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활주로 끝에 위치한 단단한 구조물과 비행기가 부딪치지 않았더라면 인명 피해가 줄었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그는 "착륙 시 조종사가 플랩이나 랜딩 기어를 내리지 못한 어떤 문제가 있었다고 해도, 그 자체가 탑승객들을 죽음에 이르게 한 직접적 원인은 아니었을 것"이라며 "승객들은 활주로 끝을 조금 벗어난 곳에 있던 견고한 구조물에 부딪혀 사망했는데, 원래라면 그런 단단한 구조물이 있으면 안 되는 위치"라고 언급했다.

이어 "원래 이런 장치는 땅에 고정돼 설치되지만, 기체와 충돌 시에는 기체에 심한 손상을 주지 않도록 부러지거나 접히도록 설계된다"며 "이번에는 비행기가 그 구조물에 부딪혀 그대로 찌그러지고 폭발한 게 보인다"고 덧붙였다.

조종사의 착륙 자체는 훌륭했다고 리어마운트는 평가했다. 그는 "훌륭한 착륙이었다. 영상을 자세히 보면, 벽에 부딪히기 직전까지 기체에 별다른 손상이 없다"며 "그 벽이 없었다면, 탑승객 전원이 살아남을 수 있었을 것"이라며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또 다른 원인으로 무한공항의 활주로에 대한 의문점을 제기했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무안공항의 활주로가 다른 공항보다 짧다는 점에 대해서도 갑론을박이 오가고 있다. 설계된 활주로는 2.8㎞지만, 주요 국제공항보다 짧아 내년 완공을 목표로 3.126㎞로 늘리는 공사를 진행하고 있었다. 이 공사로 인해 실제로 이용할 수 있는 활주로 길이는 2.5㎞ 남짓이었다.

대형 항공기 이용이 잦은 국제공항에서는 대부분 활주로 길이가 3㎞ 이상이다. 인천국제공항의 경우 3.75㎞이고, 김포국제공항(3.6㎞), 김해국제공항(3.2㎞), 제주국제공항(3.2㎞)도 모두 무안공항보다 활주로 길이가 길다. 미국 JFK, 프랑스 샤를 드골, 도쿄 나리타 등 해외 주요 공항 활주로는 4㎞가 넘기도 한다.

다만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사고의 주요 원인을 활주로 길이로만 돌리기에는 어렵다는 지적 역시 나온다. B737-800 기종의 경우 국제선보다는 국내선에 주로 쓰일 만큼 작은 규모의 항공기여서 활주로 길이만을 이유로 '위험한 공항'이라고 단정 지을 수는 없다.

국토부 역시 사고 기종이 1.5~1.6㎞ 길이 활주로에서 착륙이 가능하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평소의 이착륙 상황과 동체 착륙 등 비상 상황에서는 구분될 수밖에 없다는 의견 역시 힘을 받고 있다. 정확한 사고 원인 파악에는 최소 6개월이 소요될 전망이다.

무안공항은 무리한 선거공약이 낳은 세금낭비 사례로 꼽히는 지역 공항 중 하나다. 인근에 공항이 있는데도 선심성 공약으로 추진돼 당시 사업을 주도한 한화갑 국회의원의 이름을 따 '한화갑 공항'으로 불린다.

개항 전 연간 992만명이 이용할 것으로 예측됐지만, 지난해 이용객은 24만 6000명에 그쳤다. 코로나19 영향을 받은 2022년엔 활주로 이용률 0.1%로 '고추 말리는 공항'이라는 말까지 나왔다. 

그래도 무안공항은 최근 해외여행 급증으로 활기를 찾고 있었다. 이달부터 개항 17년 만에 처음으로 매일 출발하는 해외 노선도 확보한 상태였다.

29일 참사가 발생한 무안∼방콕 노선은 제주항공이 지난 8일 운항을 시작한 신규 노선이다. 김영록 전남지사는 30일 중국 동방항공과 산둥(山東)성 정기노선 운항을 위한 업무협약(MOU)을 체결할 계획이었으나 이번 참사로 관련 행사도 무산됐다.

전남도는 사고 수습 후 공항이 정상 운영될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는 계획이지만, 이번 참사로 공항 활성화에 다시 빨간불이 커졌다.

한편, 무안공항 활주로는 내년 1월 1일 오전 5시까지 폐쇄하기로 했으며 항공철도사고조사위원회 사고조사반이 현장에서 초동 수사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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