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8년 1월 대한민국 원양어업사의 첫 페이지를 연 지남호가 조국의 경제 재건을 위한 외화 획득이라는 대의명분을 가진 채 출항한다. 그리고 그 배에는 수산대를 졸업하고서 간부가 아닌 무급 실습 항해사에 자원한 어딘가 이상한 24세 청년이 타고 있었다. 추후 동원그룹을 세운 김재철 회장이다. 원양 어업 경험이 전무한 이 청년은 용돈으로 받은 5달러로 일본 헌책방에서 어류도감을 구매하는 기행을 저지른다. 그는 다른 선원들이 화투, 장기, 마작을 하며 시간을 보낼 때 홀로 일본어를 공부하고 어류도감을 보며 참치를 비롯한 물고기를 연구하며 한국 원양어업사의 역사를 쓸 준비를 하고 있었다.
동원그룹의 박인구 부회장(77)은 “김재철 회장님은 항상 원칙을 고수하고, 작은 것에도 철두철미하며 새로운 것을 과감히 추진하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 그런 회장님이 있었기에 지금의 동원이 있는 것 같다”고 했다.
동원그룹에 속한 이들은 ‘원칙을 철저히, 작은 것도 소중히, 새로운 것을 과감히’라는 행동규범을 공유한다. 이것은 청년 김재철을 동원그룹 회장 김재철로 이끈 그의 행동양식이기도 하다.
그에게는 '정직하게 한다'와 '약속을 지킨다'라는 양보할 수 없는 두 가지 원칙이 있다. 그가 이 원칙을 얼마나 치열하게 고수했는지 알 수 있는 사례가 하나 있다. 1973년 10월 15일에 미쓰비시사와 동산호 건조에 대한 6년 분할상환 계약을 체결한다. 동산호는 출어한지 3개월 만에 만선(3천톤)을 기록하고, 계속해서 조기만선을 거듭한다. 그 결과 당시 수산계가 불황에 허덕이고 있었음에도 미쓰비시사와 계약한 선가 상환 기일을 하루도 어기지 않고 완납했다. 그의 양보할 수 없는 원칙으로 만들어진 미쓰비시사와의 신용은 훗날 한국의 외환위기로 동원그룹 또한 큰 적자에 허덕이고 있을 때 귀한 인연으로 이어졌다. 그에게 원칙을 철저히 지킨다는 것은 항상 기본에 충실하고, 정당한 방법을 택해 공정하게 경쟁하는 정직한 자세로 철저히 그리고 성실히 일을 수행하는 것을 의미했던 것이다.
김재철 회장의 출발선은 ‘0’에서부터 시작됐다. 무급 선원으로 시작해 동원 그룹의 회장에 이르기까지 겪어야 했던 인생의 크고 작은 파고들을 온몸으로 받아내야 했다. 그럴 때마다 그에게 버팀목이 되어 준 것은 현장에서 쌓은 경험들이었다. 박 부회장은 “남태평양과 인도양에서 ‘캡틴 김(Captain Kim)’으로 명성을 날렸던 김 회장님은 원양어업 현장을 가장 잘 알았다. 그렇기에 훗날 참치캔 제조업에서도 성공을 거둘 수 있었다"라고 했다.
김재철 명예회장은 88세의 고령임에도 지방에 있는 동원 공장 시찰을 통해 현장에서 발견되는 문제점들에 날카로운 질문을 던지며 여전히 현장의 중요성을 강조하고는 한다.
김 회장의 현장을 중시하는 태도는 비단 동원 그룹에서만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동원육영재단이 지원하는 고려 라이프 아카데미를 운영하고 있는 장미정 고려대학교 교양교육원 교수는 “김 회장님은 라이프아카데미 수업이 실제로 어떤 효과가 있는지, 학생들은 어떤 식으로 교육에 임하고 있는지 등 현장에서 일어나는 일에 관해 정말 많은 질문을 하셨다. 그런 질문을 현장에서 직접적으로 학생을 만나는 1선 교수들에게 적극적으로 하셔서 솔직히 감동을 받았다”고 했다.
그는 부족한 것이 있다면 배워서 채우면 된다는 말을 할 정도로 배움에 목마른 사람이다. 김 회장과 하버드 비즈니스 스쿨 동창회에서 인연을 맺은 후 막역한 사이가 된 대구경북과학기술원 석좌교수 윤세웅 씨(64)는 김 회장에 대해 “호기심이 굉장히 많은 분이다. 그리고 그 호기심을 액션으로 연결하는 능력을 갖췄다”라고 말했다.
김 회장은 회사를 경영하며 경영 관리에 대한 지식이 부족함을 느껴 야간 대학원에서 경영학을 공부했다. 서울대학교에서 하버드대학의 case study를 몇 차례 듣고는 직접 가서 배우고 싶어 1981년 미국 하버드대학교로 향하게 된다. 당시에 동원산업이 참치캔으로 국내시장 판매 계획을 세우고 있었던 긴박한 상황이었는데도, 현직 사장이 배움에 대한 열정 하나로 과감하게 회사를 비워두고 미국으로 향한 것이다.
김 회장은 궁금하거나 배우고 싶은 것이 있으면 여지없이 연구에 돌입했다. 윤 교수는 “김 회장님은 최근 AI에 관심을 갖게 되시면서 먼저 관련 서적부터 찾아보셨다. 그러고는 AI분야의 발전을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지 고민하시다가 AI 분야 인재 육성을 위해 카이스트에 사재 500억원을 기부했다”고 했다. 그에게 호기심은 항상 액션으로 가는 징검다리인 셈이다.
김재철 회장의 평전(김재철의 삶과 경영철학, 일곡문화재단, 공병호 지음)에 이런 말이 실려있다. ‘나는 뜻한 바를 모두 이루지는 못했을 망정 최선을 다해 살아왔습니다’
《편집자 주 : 위 기사는 지상훈 대학생 기자(고려대 미디어학부 3학년)가 고려대 미디어학부 전공과목을 수강하면서 직접 취재해 작성한 기사입니다. 퍼블릭뉴스는 언론문화와 대학의 발전을 위해 언학협력을 강화하고, 미래 언론인을 꿈꾸는 대학생들의 기획기사를 게재해 독자들에게 보다 다양하고 신선한 소재의 기사를 제공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