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내 메리야스 신화를 만들어 낸 한영대 BYC 회장이 지난 16일 21시 별세했다. 향년 100세.
17일 BYC는 한영대 회장이 전날 21시에 별세했다고 밝혔다.
한 전 회장은 1923년 전북 정읍에서 5남1녀 중 셋째로 태어났다. 포목점 점원을 시작으로 자전거포, 미싱조립 상점 등을 운영하며 사업에 뛰어든 한 회장은 광복 1주년이 되던 1946년 8월 15일 BYC의 전신인 ‘한흥메리야스’를 설립해 내의 산업을 시작했다.
당시 국내 연간 내의 생산량은 약 52만매로, 국민 37.6명당 내의 1매 꼴로 보급되고 있었다. 한 회장은 '양말 편직기의 몸통을 키우면 내의도 생산할 수 있겠다'는 아이디어를 착안해 5개월의 제작 기간을 거쳐 ‘국산 1호 메리야스 편직기’를 탄생시켰다.
해방 이후 1950년 6.25전쟁이 벌어지자 한 회장은 전쟁으로 인한 극심한 인플레이션에 대비해 운영자금으로 다량의 원사를 구입해 보관했다. 전북 경제∙상권의 중심지이자 도청 소재지였던 전주로 사업장도 이전했다. 이후 한 회장은 국내 최초로 아염산소다를 활용한 표백기술을 개발해 ‘백양(白羊)’ 상표를 출시했다. 대∙중∙소로 구별했던 속옷 사이즈를 4단계(85·90·95·100cm)로 나누는 등 제품 규격화와 표준화를 정착시키는데도 앞장섰다.
한 회장이 가장 강조했던 원칙은 ‘속옷 외길’, ‘품질 제일주의’ 정신으로, 경영 76년동안 내의 산업을 이끌어왔다. BYC는 1975년 6월 상장했다.
국내 및 해외 시장에 진출한 BYC는 빨간색 바탕에 흰색 상표를 넣은 로고와 ‘세계인은 BYC를 입는다’는 슬로건을 앞세워 성장해 나갔다. 전성기에는 세계 78개국에 8000만달러 어치의 메리야스를 수출했으며 꾸준히 상승한 인기와 인지도에 한회장은 1996년 사명을 백양에서 주식회사 비와이씨로 변경했다.
이후 BYC는 1998년 한국투신이 선정한 ‘생존능력이 뛰어난 상장회사 28개사’ 10위 안에 선정됐으며 2000년에는 대한상의와 중앙일보가 공동제정한 제1회 새천년새기업상 부가가치 창출부문 수상자로 뽑혔다. 또한 능률협회가 주는 ‘최우량 기업상’, ‘최우수중견기업상’, ‘한국섬유대상’ 등을 수상하며 지속적으로 발전해 나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