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순혈주의를 깨고 성과주의를 강조하는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의 '뉴롯데' 철학에 맞춰 정준호 롯데쇼핑 백화점 부문 대표가 인사와 조직개편을 단행했다.
전통의 유통공룡이지만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흐름에 뒤떨어졌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롯데는 유통명가의 자존심을 되찾기 위해 절치부심하는 모습이다.
10일 롯데쇼핑에 따르면 정준호 대표는 지난 7일 내부 영상을 통해 조직개편안을 직접 발표했다. 롯데백화점 대표가 인사 및 조직개편 관련 설명에 직접 나선 것은 처음이다.
정 대표는 취임 두 달만에 롯데백화점과 아울렛 부문을 나눠 채널 별 전문성을 강화하고, 연공서열 관계없이 철저한 능력 위주 인사를 시행한다는 목표다.
전직 신세계맨이던 그는 '신세계 출신 불도저'라는 별명도 있다. 그가 발표한 조직개편안은 '전문성 강화'에 무게가 실렸다.
수도권 1, 2 본부와 영호남본부 3개 지역 단위로 나뉘었던 관리 조직을 통합해 외부 브랜드 업체들과의 협상력을 높인다는 취지다. 롯데백화점은 앞으로 백화점과 아울렛 사업을 나눠 별도의 채널로 특성을 살려 각각 운영한다.
수도권지역본부 산하 상품본부에 있던 식품 부문도 정 대표 직속 조직으로 분리하고, 전문성을 강화하기 위해 신선식품과 F&B(식음료)로 한 번 더 분리했다. 팀 단위 조직으로 구성된 본사 상품본부는 부문 단위 조직으로 승격시키고, 상품 카테고리 단위는 전문 분야별로 더욱 세분화했다. 해외명품은 1개에서 3개로, 남성스포츠는 △남성패션 △스포츠 △아동 3개 부문으로 나눴다.
특히, 각 부문장은 연공서열 불문하고 내/외부에서 전문가를 적극 영입하고 육성할 방침이다. 내부 인력 대상으로는 'S급(기존 차/부장 직급)부문장'으로의 승진을 자원받을 계획이다. 이미 3명은 부문장으로 임명된 것으로 알려진다. 여성 고객의 구매력을 겨냥하기 위해 여성 임원과 점장도 기존 대비 2배 이상 늘릴 방침이다.
정준호 대표의 이번 파격 인사 및 조직개편에는 신동빈 회장의 신년사 내용이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지난 3일 신동빈 회장은 신년사를 통해 "혁신을 위한 시도는 미래 성장을 위해 필수적이지만, 과거의 성공 방식을 활용할 수 없기 때문에 실패할 확률이 높은 것이 당연하다"며 "실패에서 교훈을 찾아 계속 도전한다면 새로운 기회를 잡을 가능성이 높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융합된 환경 속에서 연공서열, 성별, 지연 · 학연과 관계 없이 최적의 인재가 역량을 발휘할 수 있도록 철저한 성과주의 문화가 정착되어야 한다"며 "다양성은 우리의 경쟁력이며 도전하는 에너지의 원천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수 년 간의 위기를 혁신과 도전, 도전을 위한 개방성과 다양성으로 재기하겠다는 취지로 풀이된다.
이를 위해 신동빈 회장은 지난해부터 조직 내 큰 결단을 내려왔다. 지난해 9월 롯데백화점을 젊은 조직으로 탈바꿈하기 위해 근속 20년 이상의 직원들을 상대로 창사이래 첫 희망퇴직을 실시했다. 지난해 2022년 정기 임원인사에서는 전통 롯데맨인 강희태 부회장이 자리에서 물러났다. 인사 발표 당시 신동빈 회장은 강희태 부회장의 후임과 롯데쇼핑 각 사업부문 새 대표들을 정하는데 직접 나설 정도로 신중하고 적극적인 모습을 보였다.
이같은 메세지가 정 대표의 조직개편안을 통해 구체화 된 셈이다.
정준호 롯데백화점 대표 역시 신동빈 회장이 직접 발탁한 인물로, 롯데백화점 창사 42년 이후 생긴 첫 외부 출신 인사다. 그는 30년 간 몸 담은 신세계백화점을 떠나 지난 2018년 롯데GFR에 합류했다. 지난해 11월에는 롯데백화점 사업 부문 대표직을 맡게 됐다. 정 대표는 '신세계 출신 불도저'답게 롯데쇼핑 사업 대표 중 발빠르게 신 회장의 신년사를 반영한 방안을 발표했다.
정준호 롯데백화점 대표는 이번 내부 영상에서 "일하는 방식과 소통하는 방식을 개선해서 다시 도약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들자"고 당부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