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 생활을 하면서 누구나 한번쯤은 겪는 일일 것이다. 자료제출 기간이 임박했건만 여러 가지 일이 한꺼번에 몰려 초긴장을 해야 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한정된 시간에 일을 마무리해야한다는 강박관념에 집에 돌아와서도 꿈에서조차 낮에 못 다한 자료를 만들곤 한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공직 14년 중에 가장 인상 깊었던 업무는 ‘일자리창출담당’부서에서 일할 때다. 당시 미국발 금융위기가 우리에게 영향을 미치면서 나라경제의 전반적인 침체 속에 청년실업률 최소화에 행정력을 집중했다. 일자리 창출이 국정 최우선 과제가 될 정도였으니 정부의 지방자치단체 실적평가도 연 1회에서 3회로 늘려 업무량이 늘어나는 만큼 성과에 대해서는 재정인센티브도 많았다.
한 해 동안에 몇 년 치의 일을 했다는 생각이 들었을 정도였으니까. 결국 우리도가 경제살리기의 일자리창출분야 정부합동평가에서 ‘3회 연속 전국 최우수’라는 타이틀을 거머쥐는 보람은 컸다.
대학을 졸업하고도 예전처럼 직장을 쉽게 구하지 못하는 취업재수생들이 늘어나고 있다. 행정인턴으로 도청에 들어와 정해진 기간동안이지만 이들과 직장생활을 같이한 적도 쉽게 잊지 못한다. 더군다나 어렵게 학교를 다녔고 미래가 걱정스럽다는 이들과 대화를 나눌 땐 왠지 마음이 착잡하고 무거웠다. 그래서 이들이 안정된 직장을 마련할 수 있는 일이라면 조금이라도 더 도와주고 싶은 심정이었기에 개개인의 적성과 특기를 체크해 기업체를 찾아 인사담당자와의 취업상담기회를 기획해 보기도 했다.
한 발 더 나아가 인턴들이 보다 넓은 시각으로 시간적 여유를 갖고 직업세계에 접근할 수 있도록 기업체 현장방문, 영어캠프 운영, 취업 전문강사 초청 설명회, 행정인턴 EG(Employment Guide)사업 등의 프로그램을 만들어 청년취업난에 힘을 보태어 보려고 했지만 노력만큼 결과는 나오지 않았다.
최근, 한동안 함께 근무한 적이 있는 행정인턴에게서 ‘올해 경상남도지방공무원 시험에 합격했다’는 기쁜 소식이 날아왔다. 취업을 못해 그동안 육체적 정신적 고생이 컸었던 만큼, 성취감도 남달랐으리라.
그는 얼마 후면 임명장을 받고 말단 공무원으로서 행정의 일선에 첫발을 디딜 것이다. 그를 보면서 14년 전 내가 양산시 하북면사무소에서 첫 공무원 생활을 시작했던 기억이 문득 떠오른다. 당시 국가직과 지방직을 동시 합격했었지만 고향에서 일하고 싶은 생각에 난 지방직을 선택했다.
이후 국경일이면 도로변 태극기 달기, 면민의 날 행사 뒤에는 주변 청소, 겨울이면 산불비상근무 등으로 늘 주말과 휴일을 반납해야 했고 불이라도 나게 되면 재빨리 등짐펌프를 맸어야 했다. 쓰레기 불법투기 현장포착을 위해서는 형사 콜롬보처럼 행동 했었다. 이름만 ‘행정직’이었을 뿐 말단 시절의 내 직렬은 그야말로 ‘잡직’이었다.
내가 꿈꾸었던 공무원 생활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었다. 하지만 현장을 누비다보니 사문화된 법과 현실의 차이도 알 수 있었고 지금의 나에게 주어진 업무수행에 직-간접 도움이 되고 있다. 이번에 공무원 길로 들어선 그의 첫 업무도 현장 일이 많을 것이다.
인턴생활 중에 항상 밝고 명랑했던 것처럼 어디서든 어떤 일이 주어지든 기쁘고 달게 받아들이며 거기서 보람을 찾고 열심히 한다면 앞으로 공직생활의 밑거름이 될 것이다.